공지사항
진주상의 하계백 회장 인터뷰 (17.3.7 경남도민신문)
이  름 : 관리자
시  간 : 2022-01-10 10:58:41 | 조회수 : 466
 
▲ 하계백 진주상공회의소 회장은 80년 진주에서 쌀겨로 기름을 짜는 공장으로 사업의 발판을 삼았으며 그 이후 남강제지 공장을 인수해 33년간 경영해 오고 있다. 이용규기자


하계백 진주상공회의소 회장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상의회장이 된 후 활약이 많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 회장은 상의회장이 된 후 남부내륙철도 개설을 위한 각종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또 진주 사천 통합을 위한 기업인들의 모임을 주도 하면서 통합여론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부산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의 진주 투자유치를 위해 진부발전협의회를 만들었다. 아직은 투자유치 성과가 없지만 계속 교류하다 보면 의외의 성과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하 회장은 1946년 사천 곤명 출신으로 사업은 창원에서 시작했다. 76년 30살의 팔팔한 청년이던 하 회장은 당시는 의창군이었던 대산면에서 기름공장 고용사장을 한 것이 본격적으로 사업에 발을 디딘 계기가 됐다. 이후 80년에 진주에 와서 망경동에 있던 성광유지를 인수해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이 공장은 4년 후 기름공장 통폐합으로 공장 권리를 부산기업에 넘긴 후 사업부지는 한주건설에 매각해 지금 망경한주 아파트가 됐다. 당시 한주 건설의 이상문 사장은 이 아파트가 종자돈이 돼 건설업으로 큰돈을 번 출발이 됐다. 기름공장을 그만 둔 후 하 회장은 오늘의 자신을 만든 제지공업에 뛰어들게 된다. 84년 4월 지금의 남강제지를 인수하게 된 것. 종이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 아무 겁도 없이 제지공장을 인수해 죽을 고생을 하면서 지금까지 33년간 경영해 오고 있다. 하 회장은 “밤에 혼자 공장 마당에 앉아 울고 있었을 때가 많았다. 매일 매일이 광대가 줄타기 하는 심정으로 공장을 운영했다. 조상과 천지신명이 도와서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돈이 생기면 공장에 재투자했지 부동산 하나 사지 않았다. 그래서 재산은 많이 모으지 못했지만 진주의 제지공장들이 부도로 날아갈 때 그래도 회사가 유지됐다.


내년에는 장남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후선으로 물러날 계획이다. 서울에서 선물펀드를 하면서 잘나가던 장남이 진주에 오라는 말에 아무소리 없이 와 준 게 고맙다. 제지업이 사양 산업이긴 해도 그래도 객지에서 사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란 생각에 장남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자신이 경영할 때 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 보지만 그래도 하 회장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하 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나면 기업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애국자들은 열심히 기업을 경영해 세금 착실히 내는 기업인들인데 일부 대기업인들의 정경유착으로 인해 기업인들이 늘 욕을 먹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시간여유가 생기면 기업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보겠다고 했다. 하계백 회장과의 인터뷰는 본지 황인태 회장이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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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의창군 대산면 기름 공장으로 사업 입문
84년 남강제지 인수해 지금까지 33년간 경영
내년 장남 경영권 넘겨주고 후선 물러날 계획
종이 문외한 제지 사업으로 살 수 있어서 감사
퇴직후 기업인 위상 높이는 활동 주력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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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계백 진주상공회의소 회장은 종이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문외한이 제지공장을 인수해 지금까지 부도 내지 않고 경영한데 대해 조상님들과 천지신명이 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겸손해 했다.


대담 및 정리 / 황인태 본지 회장


-진주 상의 역사가 오래됐다고 들었다


▲그렇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됐다. 서울 상의와 진주 상의가 1884년 고종 21년에 설립됐다.


-진주 상의의 역사가 이처럼 오래된 이유가 무엇인가


▲당시 경상 우도에 상공인들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보부상 활동이 왕성했다. 경상우도 보부상 본부가 진주에 있었다. 그런 이유로 진주에서 상공회의소 전신인 상무사가 전국에서 제일 먼저 설립된 것이다. 지금도 진주에 당시 상무사 후손들이 30명가량 남아있다. 모두다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이다.


-그럼 하 회장이 몇 대 상의 회장인가


▲21대 22대 회장이다.


-하 회장은 고향이 어딘가


▲사천 완사가 고향이다.


-사업은 어디서 처음 시작했나


▲76년도에 지금 창원시에 편입된 의창군 대산면에서 기름 공장을 시작한 게 처음이다. 영광유지라는 공장이었다.


-기름 공장이 컸나


▲당시에는 기름공장이 꽤 중요한 사업이었다. 제가 한 것은 쌀겨를 가지고 기름을 짜는 공장이었는데 남이 하던 공장이었다. 그런데 부도 직전에 몰려있는 것을 고용사장으로 가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 제 사업이 됐다.


-쌀겨로 기름을 짠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잘 모를 것 같다


▲지금은 콩 기름 등이 일반화 돼 있는데 당시는 쌀겨로 기름을 짰다. 주로 튀김용 등으로 사용됐다.


-진주로 온 것은 언제인가


▲80년도에 망경동에 있는 성광유지를 인수한 게 진주에서 사업을 시작한 출발이다.


-규모는 컸나


▲성광유지는 정부에서 허가한 공장이었다. 당시 부산 경남에 정부에서 허가한 기름 공장이 5개 있었다.


-허가받은 공장이라는 게 의미가 있나


▲기름 공장의 원료가 쌀겨인데 당시 쌀겨는 정부가 배급권을 쥐고 있어서 허가받지 않은 공장은 원료공급이 어려웠다. 그래서 허가 받은 공장이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규모는 어느 정도 됐나


▲월 1억원 정도의 매출이 되는 규모였다. 당시로서는 큰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어떻게 됐나


▲83년도에 착유공장 통폐합이 이뤄졌다. 그래서 당시 부산공장에 그 권리를 넘기고 폐업했다. 공장 부지가 1000평이 넘었는데 당시 한주건설을 경영하던 이상문 사장에게 땅을 넘겼다. 이 사장이 이 부지에 아파트를 지었는데 망경 한주아파트이다. 


-그리고 무엇을 했나


▲그리고는 지금까지 경영하고 있는 남강제지를 84년 4월 1일 인수했다. 당시 이름은 대영특수제지였다. 


-기름공장만 하다가 제지회사를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모든 사업이 그렇겠지만 그리 어려울 줄 알았으면 안했을 거다. 잘 모르니 겁 없이 달려들었던 거다. 대부분 제지공장은 그 분야 종사자들이 한다. 그런데 저는 제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제지업 종사자들이 3개월도 안돼서 부도나고 도망갈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33년 동안 하고 있다.


-어떻게 경영했나


▲되돌아보면 광대줄타기 하는 식으로 살아왔다. 사실 저는 종이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살았는데 종이시장에 그렇게 사기꾼이 많은지 처음 알았다. 밤중에 혼자 앉아 땅을 치고 울고 있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위기였고 하루하루가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 조상이 돌보고 천지신명이 도와줘서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 진주시 동진로에 위치하고 있는 진주상공회의소 전경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당시 진주에 제지공장이 13개 있었다. 지금은 6개 밖에 없다. 그런데 당시 부흥제지라고 있었는데 사장이 부산상고 출신의 엘리트였다. 제지에 관해서는 박사였다. 그래서 제가 그 사장한테 가서 먼저 엎드려 절을 하고는 제지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오후 2시에 시작된 얘기가 저녁 7시가 돼서야 끝났다. 무려 5시간을 설교를 들은 거다. 그런데 그 회사는 부도가 났고 저는 지금까지 살아있다. 사업은 이론으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경영을 하면서 지키는 원칙 같은 게 있나


▲저는 아무리 돈이 남아도 부동산은 사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사는 아파트 외에는 부동산이 단 하나도 없다. 오로지 제조업만 했다. 그리고 세금을 꼬박꼬박 냈다. 세금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2003년에 국세청에서 성실납세자상이 제정돼 전국에서 12명이 수상을 했다. 당시 심사위원이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 시장이었다. 그래서 대기업 한 시간 매출도 안 되는 제가 성실납세자상을 받았나, 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조목조목 주어진 세금을 착실히 냈고 부동산을 가진 게 없는 게 고려된 것 아닌가한다는 답을 들었다. 저는 정말 세금은 철저히 냈다.


-현재 기업규모는 어느 정도나 되나


▲연 매출이 200억원 정도이다.


-적자는 나지 않나


▲연도별로 좀 차이는 나지만 크게 보아 적자는 나지 않는 것 같다.


-언제까지 일선에 있을 것인가


▲현재 장남이 부사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내년 1월에는 대표이사직을 넘겨주고 뒤로 물러앉을 생각이다.


-장남이 경영을 잘 하나


▲장남이 원래 서울에서 선물 펀드를 하는 잘 나가는 아이였다. 그렇지만 가업을 이어야 된다고 했더니 다른 말없이 진주에 내려와 잘하고 있다.


-퇴직이후에는 뭘 할거냐


▲글쎄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니 특별히 노후대책이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너무 짧다. 나름대로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진부협의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데


▲부산의 기업계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다 진주출신들이다. 그래서 넥센타이어 하는 강병중 회장이 부산 측 회장을 맡고 제가 진주 측 회장을 맡아 교류를 하고 있다.


-주로 어떤 일을 하나


▲부산에서 기업하는 출향인사들이 진주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큰 성과가 없다. 아직까지는 교류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1년에 정기총회를 하고 분기별로 운영위원회를 열고 있다. 또 부산에는 남강골프회가 있고 진주에는 진상회라는 골프모임이 있어서 서로 간에 한 번씩 초대해서 골프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교류를 하다보면 서로 간에 소통이 돼서 투자건 등도 결실이 맺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 회장은 진주 사천 통합문제에 적극적인데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저도 고향이 완사이니 사천 출신이다. 사실 진주와 사천이 통합이 되는 것이 사천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천의 기득권자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통합 반대를 선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천시장을 비롯한 지도층에서는 진주에서 통합을 생각하고 도시계획을 세우지 않아 현실적으로 통합은 물 건너갔다는 얘기들인데


▲그건 하지 않으려고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되는 이유도 열 가지고 안 되는 이유도 열 가지이다.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 내려면 한정도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지도층들이 그렇게 할 게 아니라 진정으로 시민들에게 무엇이 이로운지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 만약 통합이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사천 농민들에게 투자될 수 있다. 창원, 마산, 진해가 통합된 후 가장 낙후지역이었던 진해의 땅과 아파트 가격이 크게 올랐다. 진주-사천이 통합되면 바로 나타날 현상이 사천의 땅 값이 오르고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이다. 시민들이 자산가치가 그만큼 커진다는 말이다. 또 학군 문제라든지 진주보다는 사천이 얻을 이익이 훨씬 많다.


-그래도 이렇게 반대하는데 통합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이 있나


▲진주 사천발전협의회를 만들었다. 한 달에 한번 모임을 갖는데 사실 사천에서는 잘 참여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지도층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그래도 꾸준히 모임을 하면서 설득해 나가고 있다. 지금 양 지역이 10명씩 참여하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을 늘려나갈 계획이다.